한 그릇 메뉴를 운영한다는 것_동선과 온도를 설계하는 일
앞 글에서는 한 그릇 메뉴 하나로 여름 장사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결과 뒤에 있었던, 조금 더 실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 그릇 메뉴가 점심시간 주문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했던 건 레시피가 아니라 주방이었다.
많이 나가는 메뉴일수록
‘잘 만드는 방법’보다
‘어떻게 빠르고, 흔들림 없이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육회물회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나는 주방을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손이 닿는 거리부터 다시 설계했다.
한 그릇 메뉴는 속도가 생명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한 그릇에 들어가는 야채들을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야채 하나를 넣기 위해 한 발 움직이는 순간, 그건 곧 동선 증가이고 회전률 하락이다.
그래서 어떤 야채를 먼저 담고
그다음 어떤 순서로 올라가는지까지 정해놓은 뒤
그 순서 그대로 배치했다.
생각보다 이 ‘놓는 순서’가 중요했다.
순서가 정리되니 사람이 바뀌어도 교육 부담이 줄고, 음식 자체의 표준화도 자연스럽게 잡혔다.
차가워야 할 재료는 불과 멀리 배치했다.
육회물회는 이름 그대로 차갑게 먹어야 완성되는 음식이다.
그래서 야채, 육회 생고기, 육수 모두 온도가 곧 맛이 되는 요소였다.
야채는 차가워야 했고, 육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불이 있는 조리 구역과는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배치했다.
육수를 보관하는 기계 역시 야채 세팅 공간과는 최대한 가깝게 두되 열기와는 떨어지게 설계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방 안에 ‘온도 구역’이 생겼다.
- 뜨거운 구역
- 차가운 구역
- 세팅만 담당하는 중간 구역
이 구분이 생기고 나서야 여름에도 음식 퀄리티가 흔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가는 구역과 빈 접시가 들어오는 구역은 달라야 했다.
중요했던 건 음식이 나가는 공간과 다 먹고 들어오는 접시의 공간을 분리하는 일이었다.
테이블이 어느 정도 차기 전까지는 음식 나가는 속도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치워야 할 테이블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드러난다.
이 두 동선이 섞이면 주방은 순식간에 엉킨다.
- 깨끗한 접시가 나가는 길
- 사용한 접시가 들어오는 길
이 둘이 겹치는 순간 속도는 느려지고, 위생 관리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도 동선만큼은 명확하게 나눴다.
90% 메뉴가 정해졌을 때의 준비 방식
점심시간 주문의 90% 이상이 육회물회로 나가다 보니 재료 준비 방식도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세팅된 재료를 다 쓰면 그 아래에 바로 다음 재료가 준비돼 있어야 했다.
그래서 밧드 냉장고를 기준으로 주방 구조를 다시 나눴다.
- 위에 칸에는 바로 사용할 재료
- 그 바로 아래에는 보충용 재료
- 별도로 야채를 컷팅해 두는 서브 냉장고
- 손질되지 않은 원재료 냉장고를 분리
육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많이 나가도 신선도가 무너지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하루 예상 판매량을 먼저 정하고
1시간 단위로 나가는 양을 계산한 뒤
- 바로 사용할 육회 냉장고
- 보충용 서브 냉장고
- 손질 전 고기를 보관하는 냉장고
이렇게 나눠서 운영했다.
번거롭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더운 날씨에 신선한 재료 관리를 하기 어렵다.
메뉴가 많아질수록 관리가 어려워진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 가지를 확실히 느꼈다.
메뉴가 많아질수록 관리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는 것.
한 그릇 메뉴는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재료, 온도, 동선, 인력까지 모든 요소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오히려 메뉴를 늘리기보다 집중하는 쪽을 선택하게 됐다.
마무리하며
한 그릇 메뉴는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운영으로 완성된다.
맛이 좋아도 동선이 무너지면 버틸 수 없고
많이 팔려도 온도가 흔들리면 신선한 재료의 신뢰는 금방 깨진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느낀 건
장사는 결국 메뉴를 파는 일이 아니라, 공간과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다음 글에서는
운영하면서 실제로 드러났던 문제들,
육수 레시피를 다시 손보게 된 이유,
그리고 원가율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까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